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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La Croisade Réserve Cabernet - Syrah 2020 - 변기가 호강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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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La Croisade Réserve Cabernet - Syrah
Vintage: 2020
지역: Languedoc, South of France, France
가격: 9,900 (이마트24)
Vivino 평점: 3.7 / 5.0
평점: 3.0 / 5.0 오크향이 이렇게 나면서 느끼하지 않다는 건 그래도 반가운 일이다. 근데 단 맛은 왜 이렇게 심한거야?

 

남자들이 취미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장비이다.

야구를 시작하면 스윙 한번, 캐치볼 한판 하기 전에 선수용 글러브나 배트를 찾고, 낚시를 시작하면 바닷가도 가기 전에 낚시대를 검색한다.

그 분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나 와인과 같은 기분으로 절반 먹고 들어가는 취미를 할 때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와인을 마시면서 내가 와인만큼이나 많이 검색한 것이 와인잔이다.

잘토같은 핸드 메이드 잔도 몇 잔씩 깨먹으면서 나는 머신 메이드에 더 적합한 손이구나라는 것도 깨달으면서 나름 꽤 많은 잔을 모았다.

심지어 아직 잔에 따른 맛의 차이를 느끼는 편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런 내가 플라스틱 피크닉 잔에 와인을 따랐다.

당시에 내가 마셨던 자리에서 와인잔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보니 내 생각은 이러했다.

이 잔에 따라보고 일단 맛있으면 나중에 한잔 정도 분량만 남겨둬서 집에 가서 제대로 찍어야지.

아.. 저 "맛있으면"이라는 말이 문제였다.

맛이 없었다.

 

일단 향에서는 오크향이 꽤나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그런데 그 오크향이 기분좋은 은은함이라기 보다는 삼나무칩으로 바로 코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스키에서나 느껴지는 피트향이 느껴진다.

좋게 말하니 피트향이지, 쉽게 말하면 소독약 비스무리한 냄새도 느껴진다.

혹시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면 병원에서 나는 그 냄새가 느껴진다.

위스키에서는 꽤 반갑게 느껴지는 향인데 와인에서 이 향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에서는 단 맛이 지나치게 강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단 맛이 한번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혓바닥에 남아서 괴롭히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미디엄 바디보다는 미디엄과 풀바디 사이 정도의 바디감이 꽤나 괴롭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단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좋아하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다.

이 단 맛을 차갑게 마시면 나을 것 같아서 칠링도 해봤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결국 다 마시지는 못하고 변기통으로 향하고 말았다.

참고 먹으려고 하다가 이걸 해독해야 하는게 내 간이라고 생각하는 꽤 큰 현타가 왔다.

세상은 넓고 마실 와인은 많은데 내가 아껴줘야지.

 

내 입장에서 내가 마시려고 재구매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저가 와인에서는 워낙 많은 병을 생산하다보니 병 단위로도 차이가 있는 바틀 베리에이션이 심한 편인데 그걸 다 떠나서 굳이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들지 않는다.

물론 다른 빈티지 역시 구우우욷이 사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와인이 가지가 없는 것이냐라고 한다면 그 역시 그렇지 않다.

어쨋든 이 가격에 와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다.

적당한 색상에, 적당한 질감, 적당한 향, 게다가 달큰함 맛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와인이라면 일단 거부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소주를 마시고 싶지 않을 때엔 가져가도 괜찮을 와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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