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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Chateau Haut-Brion 2011 - 입맛만 고급지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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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Chateau Haut-Brion

Vintage: 2011

지역: Pessac-Leognan, Bordeaux, France

해외평균가격: 641,262원

전문가 평점: James Suckling 96 코에서는 섬세한 레드커런트와 베리의 풍미가 달콤한 담배향과 꽃향과 어우러진다. 풀 바디, 높은 탄닌감, 얇게 썬 초콜렛, 베리, 삼나무 역시 느껴진다. 잠자는 당신을 깨우는 듯한 퇴폐미 가득한 와인이다. 2018년 이후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평점: 4.0 / 5.0 이게 가죽향이구나

 

와인 마시는 사람이 꿈꾸는 것 중 하나가 5대 샤또를 마셔보는 것이다.

당연히 5대 샤또를 몰아서 마셔보면 더더욱 의미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한 50명이 모여도 10만원씩 내야 할테니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보니 큰 결심을 하고 한 병 정도 마셔보면 그 힘으로 또 며칠을 살아가는 식이다.

 

이러한 비싼 와인을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파티를 짜는 것이다.

당연히 와인을 올곧게 한 병을 혼자 비우는 것도 좋겠지만 계속 말하지만 비싸다.

그렇다고 마냥 사람을 모으는 것도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니다.

그만큼 본인이 시음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드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도 못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농담삼아 말하는 가장 적절한 인원은 세네명이다.

특별히 대단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둘은 적어보이고, 다섯이 넘어가면 좀 많아 보여서 그렇다.

그래서 다섯이 넘어가면 한 병 정도를 (구할 수 있다면) 더 준비하는게 좋다고 본다.

 

여튼 이 오브리옹, 특히나 시음 적기에 들어온 이 귀한 오브리옹을 꽤나 경건한 마음으로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시기가 좋지 못했다.

코로나가 가장 극심하던 시기였고,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도 꽤 엄격하던 시기였다.

 

애기가 없는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혼까지 해서 자제까지 있던 지인들과 만나기에 적절한 식당을 찾기가 꽤나 어려웠다.

가급적이면 방이 제공되는 형태였으면 좋겠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최소한의 와인잔이 제공되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사람 머리 속은 다 거기서 거긴지 그런 조건을 갖춘 곳 중 예약이 가능한 양식당을 예약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서 간 곳은 와인잔을 제공해주는 이자카야(!) 였다.

 

이렇게 길게 앞선 배경을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순수하게 와인을 즐기기에는 꽤나 어려운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아까 앞서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었던 경건한 마음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실망했을까?

 

첫 한 모금에서 느껴지는 향은 가죽향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와인을 마시기 전까지는 와인에서 무슨 가죽 냄새인가 싶었는데 이 와인을 마셔보니 이해가 되었다.

땀에 절어있는 기분 나쁜 가죽향이 아니라 가죽 공방에서 나는 신선한 향기에 가까워서 이상한 표현이지만 커피의 향에 가까운 가죽향이었다.

 

동시에 담배향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아니, 간접흡연 피하려고 창문도 안 여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슨 담배에 향이라는 고급스러운 접미사를 붙여주나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담배는 불을 붙이고 빨아들여서 뿜어내는 그 기분 나쁜 향이 아니라 불을 붙이기 전 담배잎의 냄새에 가깝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면 좀 고급 시가샵에 가서 시가 냄새를 한번 맡아보면 어떨까 싶다.

분명히 담배인 것을 알고, 불을 붙이면 고약한 냄새가 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꽤나 매력적인 향으로 다가온다.

 

연필심에서나 느껴질 흑연향 역시 코에서 느껴졌다.

흑연향?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면 연필심을 칼로 깍을 때 나는 은은한 흑연향이 좋아서 일부러 연필을 칼로만 깎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흑연향 역시 꽤 재미있는 향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풍미가 다채롭게 다가오다보니 한가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오브리옹의 파워를 맹신하고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준 것이다.

2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조금 더 열리길 기대했는데, 여기서 조금 꺽여버렸다.

물론 젖은 낙엽향이 약간 더 올라오긴 했는데 아까 좋았던 풍미는 많이 사라졌었다.

그런데 약간 아쉽다는 것이지, 결코 나쁘다라는 얘기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래서 비싼 와인을 사람들이 찾는구나를 느꼈던 와인이다.

그동안 마셨던 소위 말하는 가성비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풍미가 엄청나게 느껴진 와인이었다.

말그대로 엘레강스란게 이런 것이구나를 경험할 수 있었고, 다음날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와인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제 나는 큰일났다.

예전에 대학원을 잠깐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시기 벌 수 있는 돈은 또래에 비해 제한적이다.

그런데 교수님들과 어울리다보니 좋은 식당은 은근 자주 다녔다.

그래서 입맛은 고급이 되었는데 내 지갑으론 감당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

분명히 어제까지 맛있던 김치찌개 집에서 돼지고기 잡내가 느껴지는 식으로 말이다.

아마 이 와인이 지금부터 다른 와인 평가를 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약간의 걱정이 된다.

 

당연히 가능하다면 재구매를 하고 싶지만 지갑이 그렇게 두껍지 않다.

아마도 다른 5대 샤또를 도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게 합리적인 금액에 나왔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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