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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 우리는 시 세계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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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좋은 일도 많겠지만 안 좋은 일이 분명 적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악은 문이과라는 개념이다. 어찌보면 이 문이과라는 개념이 인생을 정한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만큼 중요한 개념인데 문제는 우리는 이 선택을 지나치게 어린 17살에 강요받는다는 사실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문이과 선택이 단순히 배우는 과목의 문제가 아니라 하다못해 성격까지 규정짓는다는 점이다. 나는 17살 고등학교 1학년 이과를 선택한 이후부터 감정이 없는 냉혈한처럼 살아왔고, 최소한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지어왔다.

 

그러다보니 책을 꽤나 많이 읽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멀어졌던 장르가 이 '시'라는 것이다. 시를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라고 하면 웬지 낯간지러운 감정의 열거, 더 솔직하게는 문과 감성 장인들의 말장난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특히나 고등학교 문학 시간을 겪으면서 시라는 텍스트는 나에게 분석을 해야 하는 '자료'에 가까웠지, 그 자체를 작품으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시를 읽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도 모르게 그 시에서 '화자'가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찾거나, 어떤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지 시에서 사용된 '기술'을 찾는데 집중했다. 당연히 이렇게 읽는 시가 재미있을리가 없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에서 멀어져서 시만 덩그러니 모여있는 시집이 어려운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처음에는 시와 상관없어 보이는 작가의 생각을 쓰고, 그리고 앞서 시와 상관없어 보였던 그 작가의 생각을 시와 엮어서 설명하고,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의 일상이 작품으로써의 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말하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를 쓰는 시인들 역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고, 시라는 것 역시 그 사람들이 '일상'속에서 적어낸 이야기이다. 다만, 함의를 조금 더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많은 시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시에 대한 얘기가 중구난방으로 흘러갔다. 장담컨대 이 책을 읽으면서 소개된 모든 시를 일일히 찾아가면서 읽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그 시를 다 찾아가면서 책을 읽었다면 독서의 흐름이 깨지면서 책에 대한 집중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욕심을 조금 버리고 몇 가지 시에 집중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과유불급. 작가가 책에서 몇 번이나 말한 것처럼 결국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과 다름없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 그 한 편의 시가 상기시킨 자신의 일상을 얘기했었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일상은 결국의 한 편의 시인 것이다. 내가 이과를 선택한 순간 나는 시와 멀어지는 삶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었던지, 혹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던지 내 삶은 시와 한 순간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내 삶은, 아니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은 결국은 한 편의 시이다. 우리가 그것을 풀어낼 수 있다면 시인이 될 수 있다. 그럴 수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많은 시를 써두었다. 우리는 그것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평가 - ★★☆

최소한 나는 작가가 소개한 시 중 3/5 정도만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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