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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 우리는 선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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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가 선량하면, 혹은 불순한 의도가 없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용인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작가 스스로 내리기도 하고, 독자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그 합의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읽는 내내 써있는 사례들이 불편하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은 작가의 소위 말하는 썰(?)을 푸는 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고 싶고 반박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닌데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렵다. 이 말을 하면 분명 나만 나쁜 사람이 될 것이란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러한 불편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차별주의자”라는 단어를 듣고 분명히 본인이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가 차별주의자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감정은 “KKK단” 혹은 “가부장 사회” 등 극단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꽤나 복잡하고 섬세한 이 현대사회에서는 그 정도 극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물론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는 할 뿐, 그것이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보편이 되기는 어렵다. 작가가 말하는 차별은 “아무 생각없이” 혹은 “아무 의도없이” 이뤄지는 소극적 차별을 얘기하고 있다. 혹시 내가 그러한 차별의 공모자가 아닐까? 책을 읽는 도중, 혹은 읽고 나서라도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한번이라도 던졌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이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 책의 사례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신촌에서만 학교를 12년을 다녔기 때문에 동성애 축제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한명이다. 소위 말하는 퍼레이드 없이 소소하게 진행되었던 시절부터, 퍼레이드 역시 지켜봤으며, 규모가 커져서 시청 앞 광장으로 진출(?)하는 것까지 목도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나는 이 행사가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LGBT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은 일부 인정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축제가 퀴어 문화에 대한 또다른 형태의 고정관념을 만들어서 싫어했다. 나와 같이 평소 LGBT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1년에 한번 정도 벌어지는 이 행사를 보면서 동성애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모이는 행사에서 어느 한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장착하게 된 셈이다.

엑스칼리버마냥 세상의 모든 현상을 차별로 설명하려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성 할당제 혹은 남녀간의 임금 차이를 단순히 차별로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접근이다. 임금 차이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똑 같은” 일을 똑 같은 조건에서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가지 이유로 월급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그 이유로 학력을 얘기하기도 하고, 성별을 얘기하기도 하고, 출신지를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이러한 “똑 같은”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내 옆에서 일하고 있는 동성에 동기인 직장 동료를 보자. 당신은 그 사람과 똑같다고 하면 거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임금 차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성별에 따른 전공 선택 등 본질적으로 파야 하는 문제들은 외면한 채 50%를 여성으로 채우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이 나오지 않았냐 싶은 것이다.

끝으로 내가 이 책을 불편해했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차별의 공모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부분 역시 인정한다. 나 역시 인터넷 상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혐오 표현을 접하면서 거기에 익숙해진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민주주의의 느린 속도를 인정하지 않고, 나만이 옳다는 선민의식이 책에서 너무나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늘 느리다.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필요한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그 민주주의가 점점 더 느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차별이라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서는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향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답을 정해놓고 왜 정답을 모르냐고 다그치는 것이 나에겐 불편했다. 세상의 차별에 불편해하라는 책을 읽었음에도 읽고 나니 책이 가장 불편했다.

평가 - ★★☆☆☆
왜 PC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감하기 이전에 먼저 지쳐버렸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사족) 조 모임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모두가 조모임을 했었다. 분명히 회고해보면 부모님이 매일 아파서 병 구완을 하던 효도 빌런, 말만 하면 트집 잡는 논리 빌런 등 각종 빌런이 있었는데 지금 물어보면 다들 조모임만 하면 고생하던 조장들만 모여있다. 차별을 당한 이는 있는데 차별을 한 사람은 없는 그런 느낌이 그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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