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일견 풍요로워 보이는 와중에도 부족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마 2030 세대들은 저 말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세대는 풍요로웠던 적이 없고, 그로 인해서 특별한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소확행'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건데 확실한 행복에 대해서는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소소'한 행복에 만족을 해야 하는 것일까? 두번째로 '헬조선'이라는 말을 쓰다가 이제는 더 이상 그 말 조차 쓰지 않는다. 정말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보다 행복해져서 그런 말을 쓰지 않게 된 것일까?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가 믿었던 행복 공식이 깨지면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한국 사회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었다. 열심히 일하면 가족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가족이 편히 몸을 뉘일 집 역시 살 수 있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집의 위치나 크기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그 집을 늘려가는 재미 혹은 보람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가족을 가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연애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 집이란 것은 더 이상 '사는' 공간일 뿐 '살' 수 있는 매물이 아니었다. 몇천원 아끼고 저축을 한다고 해도 제 몸하나 뉘일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겠단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을 찾기 시작하였다. 사회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행복 공식에 편승하지 못할 것이라면 자기 만의 공식을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젊은 세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기도 하였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꽤 잔인한 단어였다.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지옥같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신분제 사회인 '조선'과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가? 그러나 이 말이 유행할 때만 해도 이 말을 쓰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겠다라는 희망에서 사용했던 단어였다. 지금은 이렇게 지옥같은 사회이지만 우리가 이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를 바꿀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은 될 수 있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표현조차 쓰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해지고, 천국처럼 변해서?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저 단어를 쓰지 않게된 순간은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도 접기 시작하면서로 기억한다. 도전보다는 먼저 포기를 배우는 게 요즘 젊은 세대의 일상이다.
포기에 익숙한 삶이라고 해도 인간이라면 하나쯤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좋은 차일 수도 있고, 좋은 술일 수도 있고, 근사한 저녁일 수도, 혹은 눈이 뒤집힐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는 명품백일 수도 있다. 젊은 세대는 지금 가난하다. 그리고 슬프게도 앞으로도 (최소한 우리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직 사회는 그 젊은 세대에게 기존의 행복 공식을 보장해줄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빈곤 속에서도 잠시라도 나를 풍요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헬조선'보다 더 살기 어려워진 현실을 우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평가 - ★★★☆☆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트위터에선 욕먹고, 인스타에서는 사람들이 공감했는지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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