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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일기 -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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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미안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미안한 순간들이 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우리네 부모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고,

소중한 사람에게도 늘 자존심만을 세우는 순간이 있어서 미안할 때도 있다.

물론 말은 못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이 시대에 아직도 남아있는 남녀의 불평등함에 기득권을 가진 남성으로서?

글쎄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책을 읽은 이후에도 그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나는 페미니즘에 꽤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십수 년 전, 당시에는 페미니즘도 아닌 "여성학" 수업을 굳이 찾아 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여성학에서 말하던 불평등에 대해서 꽤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낸 결론은 나는 결코 불평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를 꽤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갔고, 그리고 가부장적인 모습이 그래도 조금 남아있던 시기에 남성으로 태어났다.

물론 공부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았고, 남성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차별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한국 사회에 차별이 없다고 해봐야 크게 의미는 없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다니는 남성이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말한다는 것은 화이트 컬러 직업을 가진 백인이 인종차별을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불평등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중이다.

이 책은 그 고민의 연장선 상에서 접한 책이다.

지금은 조금 한 풀 꺾이긴 했지만 페미니즘의 사상검증으로 쓰였던 탈코르셋이라는 게 꽤 궁금했으니 말이다.

 

나는 항상 탈코르셋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탈코르셋은 인간이 자기의 옷을, 외모를 꾸미는 방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탈코르셋을 통해서 정말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가?

 

아쉽게도 이 두가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서 이 책은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몇 가지 극단적인 사례들만 나열했을 뿐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극단적으로 내몰려있으니 탈코르셋이 필요하다는 공포 마케팅 말이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나는 15년 전에 축구에 거의 미쳐 살면서 축구팀 주장까지 했었다.

그렇게 미쳐살다가 축구를 관두게 되었다.

우리 팀 골키퍼가 상대팀 공격수에게 무리한 태클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격수의 정강이가 부러졌다.

마치 폭죽 소리 같은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그 이후 도저히 축구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남들도 축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하면 다리 부러진다고 공포심을 상대에게 말한 적도 없다.

내가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본 극단적인 경험이 있다고 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축구를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개인적인 그리고 극단적인 경험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라는 개인이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사소한 결심뿐이다.

아니, 조금 더 확장하면 그래도 보호대는 끼고 축구하세요 정도일까?

 

그런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있으니 내가 아닌 너도 탈코르셋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왜라는 질문은 소거되어 있다.

그리고 왜라고 묻는 사람에게 오히려 이렇게 질문한다.

이렇게 불쌍한 여성이 있는데 당신만 화장해서 행복하세요?

 

그래서이 책은 나에게 미안함만을 줬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한 나무에게 말이다.

나무야. 다음 생에는 꼭 의미 있는 책으로 다시 태어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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