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을 읽고 아마 다들 당황했을 것이다.
제주도. 그것도 먼 옛날의 제주도에 살던 구순열을 가진 훈이의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니. 제목이 파친코인데 언제 일본에 가서 파친코를 한다는 말이지?
여하튼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인지 소설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진행된다.
한 챕터가 지나면 수년씩 지나가기도 한다.
게다가 문체가 담담하다 보니 심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읽고나면 좀 그렇다.
아니, 식민지배를 그렸던 소설치고는 생각보다 어둡지는 않네?
일본이 나쁜놈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네?
그나저나 왜 하필 제목이 파친코지?
오늘 리뷰에서는 왜 제목이 파친코인지에 대해서만 조금 얘기를 하고 싶다.
먼저, 모자수에게 파친코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재일 조선인의 모습이다.
해방이 되었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조선인에게 여전히 조국은 없었다.
그들은 일본에서는 더럽고 폭력적인 조선인이었고, 해방된 대한민국에서는 조선어도 할 줄 모르는 더러운 일본 놈이었다.
그런 그들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파친코였다.
도박이라는 특성상 그 아무리 깨끗하게 운영한다고 해도 결국은 멸시받을 수밖에 없는 그 파친코 말이다.
모자수는 파친코를 통해서 큰돈을 벌지만 누구도 (모자수 본인을 포함하여) 모자수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아에게 파친코는 자포자기였다.
아마 책을 읽고 난 평범한 독자는 왜 노아가 자살했는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깐)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자.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은 노아의 삶을, 존재를 부정하고 이방인으로 대한다.
그런 노아에게 유일한 희망은 나의 아버지이다.
물론 노아가 아버지와 살가웠던 관계는 아니지만 노아는 아버지를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존경했다.
아버지는 노아가 생각하는 무너지지 않는 조선인으로 보인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갔으며 단 한 번도 세상과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배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노아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기 위해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런 노아의 세상이 무너진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나의 아버지가 더러운 사업을 하는 야쿠자였던 것이다.
노아는 희망을 잃었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는 더럽고 폭력적인 야쿠자의 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숨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했던 것이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후 그의 삶은 사람의 삶과 같지 않다.
마치 짜인 듯이, 연극에 올라간 배우처럼 정해진대로 불안하게 살아간다.
어차피 삶을 포기했으니 그는 더 이상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데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런 그가 선택한 포기의 방식이 파친코이다.
그런 그의 불안한 삶은 어머니의 재등장으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다.
일본인으로 연극하며 살아가던 그의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판에 박힌 일상에 파문이 일면서 더이상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번엔 삶을 포기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연극을 그만두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에게 파친코란 현실이다.
아버지 모자수와는 아들 솔로몬만큼은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더러운 조선인이 하는 파친코를 그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의 땅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으로 돌아와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그 역시 (일본인이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해고된다.
솔로몬은 그제야 현실을 느낀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 친구가 다시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는 뼈저린 현실을 느낀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운명은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기로 한다.
물론 이 책에서 저렇게 감정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담담하게 서술하다 보니 정신없이 읽을 때는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책장을 덮고 보니 그들의 삶이 무겁게 느껴져서 슬프게 느껴지던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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